2022년,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재밌었다. 소중한 인연들도 만나고 개인적으로도 크게 성장을 했다. 학부 졸업을 (드디어) 했고, 회사에서도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365일 중 364일이 즐겁고 행복했다. 단 하루를 제외하고. 그 하루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2022년 12월 21일 오전 9시. 모르는 해외 번호로 전화가 왔고, 약 10초 간의 침묵 이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이메일로 알려주겠단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어서였을까, 그냥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침대에 다시 누워서 눈을 감았다.
캐나다로 출국하기 8일 전, 그리고 아마존 밴쿠버에서의 첫 근무일 3주 전이었다.
출처: Amazon Layoffs
이 글은 내가 아마존에 지원했을 때부터 출국 직전에 해고당했을 때까지 그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 과정 속에서 겪었던 상실감과 불확실성, 그리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나의 감정들도 솔직하게 담았다. 해고당한다는 게 그리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생에 한번 있을 만한 경험을 글로써 남기고 싶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 2022년 3월로 돌아간다. Link to heading
학교 페이스북 그룹을 눈팅하던 와중, 07학번 선배님의 게시글이 눈에 띄었다. 아마존이 서울에서 “hiring event”를 한다고, 관심 있으면 본인한테 레퍼럴을 받으라고. 아마존의 채용 이벤트라.. 한국에서 하는 채용 설명회로 생각해서 관심 있다고 표현했고, 이력서를 본인한테 주면 채용팀에게 전달하겠다고 답변 받았다. (아마존의 hiring event 란, 채용 설명회가 아닌, 리쿠르터들과 인터뷰어들로 이루어진 채용 그룹이 현지에 직접 방문해서 채용을 진행하는 행사다.. 라고 그 때서야 알게 됐다)
부랴부랴 이력서를 영문으로 작성했고, 당연하게도 며칠 후에 불합격 이메일을 받았다. 워낙 대충 작성하기도 했고, 스타트업에서 2년 정도의 경험만 있었기 때문에 합격을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서류 스크리닝 단계에서부터 컷 당해서 면접 과정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소문에 따르면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진행한다는데.. 겸사겸사 호텔 구경도 해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이미 작성한 영문 이력서를 쓸모없이 그대로 방치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몇 군데 수정하고, 부족한 부분도 채워 넣고, 장황하게 쓴 부분은 줄이는 식으로 더 완성도를 높였고, 링크드인에 업데이트했다. 내친김에 이름, 주소, 학력, 등 보이는 모든 곳을 영문으로 변경했다. 영문으로 작성하면 뭔가 멋있어 보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거짓말처럼 일주일 정도 후, 4월 8일에 아마존의 Technical Recruiter로부터 링크드인 메시지를 통해 연락이 왔다. “너의 커리어 패스는 정말 어메이징 해! 아마존 캐나다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있는데, 지원해 볼래?”라며 지원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줬다. 얼마 전에 채용 이벤트에서는 서류 탈락을 했는데, 리크루터가 직접 지원해 보라고 연락이 왔던 것이다. 설레기도 하면서, 심장이 뛰었다. 해외 취업.. 항상 꿈꿔오기만 했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갈지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터였다.
테크 리크루터의 메시지
바로 제안을 수락하고, 면접을 준비했다.
아마존 면접 프로세스 Link to heading
는 워낙 유명해서 구글링하면 다 나오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나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프로세스보다 훨씬 간소화된 버젼이었다. 서류 스크리닝은 리쿠르터가 먼저 연락이 왔기 때문에 패스. 전화 인터뷰는 스킵 했고 바로 Online Assessment(OA)로 넘어갔다. OA에는 온라인 코딩 테스트, Work Simulation, Work Style Survey 총 세 가지의 과제를 약 두 시간 안에 풀고 제출해야 했다. 코딩 테스트는 단 두 문제 나왔고, 리트코드 이지 ~ 미디엄 난이도의 문제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틀 후에 On-Site 인터뷰를 보자고 연락이 왔다. 온사이트 인터뷰는 4명의 면접관과 각각 한 시간 씩, 총 4번의 세션으로 진행됐다. 밴쿠버 현지 면접관들과 화상으로 면접을 보기 때문에, 시차에 맞춰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한 시간 안에 LP (Leadership Principle) 30분, 그리고 라이브 코딩 문제 30분씩 진행을 했다. 라이브 코딩은 시스템 디자인, 알고리즘, 등 다양하게 나왔고, 모두 다 무난하게 풀었던 것 같다.
여하튼 우여곡절이 좀 있었지만,
6월 25일에 리크루터로부터 합격 이메일을 받았고(!!), 7월 15일에 오퍼 레터가 도착했다. 지원한지 약 두 달 반이 지난 이후였다. 사실, 내심 붙을 거라는 기대는 하고 있었다. 네 번의 면접에서 완벽하게는 아니었지만 다 괜찮게 답변을 했고, 인터뷰어들의 표정도 찡그리는 것 하나 없이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이었다. 근데 실제로 최종 면접을 통과했다고 연락받았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리크루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조심스럽게 면접에 대한 피드백도 요청했다. 원래 피드백은 면접자한테 공유하지는 않지만 당신은 4명의 면접관들 사이에서 “unanimous decision” 이였다, 라는 기분 좋은 축하도 받을 수 있었다.
오퍼레터에 적힌 금액은 TC(Total Compensation) 210k CAD. Link to heading
그 당시 환율로 2억 1천만 원. 그러나, levels.fyi, glassdoor, 미국 블라인드 등을 참고해 보면 이 정도 금액이면 레벨 5 연봉 레인지의 하위권에 속해 있었다. 캐나다에서의 물가, 세금, 월세 등을 고려하면 한국에서보다 연봉은 높지만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더 낮았다. 그래도 4명의 인터뷰어로부터 올 패스를 받았는데, 210k는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크루터들의 전형적인 low balling이라고 생각했다. (연봉을 시장 가격보다 더 낮춰서 제시하는 것을 low balling이라 한다)
심사숙고 끝에 “240k ~ 260k로 맞춰주면 나는 기쁘게 연봉 계약서에 싸인 할 것 같다” 라고 배짱을 부렸다. 연봉 협상이라는 것을 처음 해봤고 (현 직장에서는 항상 내가 생각한 나의 가치보다 더 높게 연봉을 “통보”해서, 협상할 거리가 딱히 없었다), 아마존 외에는 역제안 할 다른 오퍼도 없었기 때문에 내심 불안하긴 했다.
예상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제안이 왔다. 이번에는 250k CAD. 원하던 연봉 레인지 안에 있었으니, 그리고 연봉이 더 높으면 오히려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할 것 같아서 큰 고민 없이 수락했다. 바로 역제안을 한거 보니, 더 높게 불렀어도 될 걸이라는 생각도 했다.
오퍼 레터의 일부
그래도 현재 직장에서의 실수령액보다 비슷하거나 살짝 많았다. 밴쿠버는 세금을 40퍼센트 이상을 내고, 월세 또한 300만 원쯤 한다. 물가 차이도 고려해보면 오히려 한국에서의 삶이 경제적으로 더 이득일 수도 있었다. 근데 애초에 돈 때문에 아마존을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고, 전 세계에서 모인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멋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싶었다. 빅테크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와 개발 문화도 경험하고 싶었고, 해외 생활이 주는 설렘과 불안정감도 겪고 싶었다.
연봉 계약서 서명 이후에, 입사일도 조율했다. 비자 및 워크퍼밋을 준비하고 리로케이션 하는 시간 등을 고려해서 지금부터 5~6개월 뒤인 2023년 1월에 입사하는 걸로 제안받았다. 나야 환영이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마무리 해야 되는 프로젝트들이 남아있었고, 나도 입사하기 전에 여유를 갖고 쉬고 싶었다.
그제야 실감 났다. 연봉이 2억 5천만 원이라니.. 그것도 만 26세에..! 연봉도 물론이지만 3년간의 경력이 인정받아 레벨5로 제안 받은 것도 큰 행운이었다. 한국 남자 기준으로는 매우 어린 나이였고 (군대 때문에 2년 정도 손해 보는 것을 고려하면), 외국 기준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뇌피셜.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 개발자 커리어의 추월 차선에 올라탄 느낌이 들었다. 가서 열심히만 하면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람보르기니 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강달러를 비롯해 한미 금리 역전으로 원·달러 환율은 고공 행진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캐나다 달러 또한 강세였다. 하루하루 높아지는 환율 때문에 한국 경제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숨 쉬고 있는데 연봉이 올라가다니. “250k cad to krw” 를 검색하는 게 하루의 쏠쏠한 재미였다. 물론 캐나다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원화로 계산해보면 환율이 최고조였을 때 2억 6천만 원 까지 상승했다. 숫자가 주는 자부심과 안도감이 있었다. (물론 12월 말 돼서는 환율이 떨어져서 2억 3천만 원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하루의 재미였던 “250k cad to krw”
10월 31일에 퇴사하고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경험을 위해 잠깐 해외로 가는 게 아닌 완전 이민을 생각하고 있었고, 최소 2년간은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싶었다. 가족, 친구, 지인들과 마지막 약속을 잡고 온갖 술자리에 다 나갔다. 건강을 챙기고자 PT도 끊었고, 꾸준히 운동하며 바른 자세를 만들려 노력했다. 한국의 의료 혜택을 누리고자 병원 순례도 했고, 건강검진도 받아서 적절한 치료도 했다.
밴쿠버 갈 준비도 틈틈이 했다. 워크 퍼밋을 받기 위한 서류도 다 준비했고, 한국에서 정리해야 될 것들도 리스트업했다. 도착하자마자 묵을 임시 숙소를 구했고, 보증금도 미리 송금했다. 유심칩을 미리 구매하여 캐나다 번호를 발급받았고, SIN 넘버와 은행 계좌 등을 어떻게 개설하는지 찾아봤다. 아마존에서 필요로 하는 서류들도 작성을 완료했고, IT 장비도 신청해놨다. 사원증에 등록될 사진도 미리 업로드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노션에 정리해놨다. 원래 정리나 계획을 잘하는 성격은 아닌데, 철저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초반에는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For Sale: Vancouver Checklist, Never Used
부모님 도움 없이 혼자 이민 간다는 불안함과 두려움, 밴쿠버에서 만날 새로운 인연들과 나 자신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공존했다. 특히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그런 마음은 더 커졌다. 만날 사람들은 이미 다 만나서 작별 인사를 하고, 가족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면서 슬슬 짐도 싸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Link to heading
12월20일, 아마존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제목은 “PERSONAL & CONFIDENTIAL”.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제목을 이렇게 지은 거지 생각하면서 내용을 열어봤다. 아무 내용 없이, 그저 다음날 오전 9시에 전화 괜찮으냐고 물어봤다. 아마존이 연락하는데 뭐 별다른 수가 있나. 시간 괜찮다고 답장했고, 다만 어떤 내용인지 미리 알려주면 내가 먼저 생각해볼 수 있으니 얘기할 주제에 대해서만 말해달라고 했다.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시차 때문에 어차피 늦게 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Personal & Confidential
그리고 그 다음 날 전화를 받았고, 해고 통보를 받았다. 단 5분 만에.
정확하게는, “Amazon has rescinded the offer of employment”. 아마존이 오퍼를 철회한 것이다. 아마존의 장기적인 건전성을 위해, 비즈니스 니즈들에 부합하기 위한 결정이란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팔로업으로 받은 이메일에는 하나의 서류가 첨부돼있었고, 이 문서에 서명하면 “기본급(Base salary)의 한 달 치를 일시금으로 주는 대신, 아마존이 오퍼를 철회하는 데에 따른 모든 법적 조치로부터 면제된다” 라 나와 있었다. 그것도, 30일까지 서명하고 문서를 전달해야지만 돈을 주는 조건이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은? 내가 계획했던 밴쿠버에서의 삶은? 일 년 후 미국으로 트랜스퍼 계획은?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그렇게 쉽게 잠들 수 있을 리가. 열두 시에 예정되어있는 헬스 PT도 받고, 목욕도 개운하게 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머리를 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도 내 현재 상황을 올렸다. 한평생 그렇게 많은 위로를 받은 적이 없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꿀잼 몰카 그만하라고도 했다. 아마존, 그리고 AWS를 불매하겠다는 기특한(?)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나보다 더 분노했고, 대신 욕해줬다. 물론, 캐나다 못 가게 돼서 본인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의금이나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됐을 때, 이메일로 답장을 보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았고, 이 결정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보고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음의 질문들을 보냈다.
- 이 결정은 final이고 irreversible 한지
- 혹시라도 final이 아니라면, 연봉을 낮춰서든 레벨을 낮춰서든 다시 팀에 합류할 수 있는지
- 다른 팀에는 자리가 없는지, 만약 있다면 내가 들어갈 수 있는지
- 서류를 싸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지금 생각하면 구차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돌아온 답장은, 당연하게도, “오퍼 철회” 에 대한 철회는 불가능했다.
미국 블라인드를 찾아보니, 나와 같은 상황인 분들이 많았다. 다들 “PERSONAL & CONFIDENTIAL” 한 이메일을 받았고, 한순간에 해고를 당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본인도 퇴사하고, 와이프도 퇴사하고, 집도 렌트 주고, 차도 팔아서 해외 이주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해고됐단다. 또 다른 분은 relocation 당일에 해고 통보를 받아서 오고 갈 곳도 없는 신세였다.
출처: 블라인드
어떻게 보면 출국하기 전에 이런 소식을 접한 게 나한테는 큰 행운이었을 수 있다. 만약에 밴쿠버 도착해서 집 계약을 하고 보증금까지 준 상태에서 해고당했다면.. 아니면 내가 가정을 이뤄서 가족 전체가 이주를 계획하고 있었다면.. 정말 끔찍했을 거다.
그 전에도 정리해고에 대한 뉴스는 꾸준히 있었다. 메타, 넷플릭스, 트위터, 코인베이스, 등 누구나 알 법한 대기업들도 대규모 레이오프를 진행했고, 미국 블라인드 및 링크드인에서는 해고당한 사람들이 재취업을 위해 레퍼럴을 받고자 하는 게시글이 넘쳐났다. 아마존도 11월에 1만 명 규모의 정리해고를 발표했고, 알렉사 등의 팀이 영향을 받았다.
이 모든 게 나와는 상관없을 줄 알았다. 아직 입사도 하지 않았고, 첫 근무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아직 뭘 보여주거나 증명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내 성과에 대해 평가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리해고란, 저성과자 또는 저성과팀에게만 해당하는 줄 알았다. 근데 웬걸, 그게 바로 나라니. 정말 상상으로만 해왔던,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우연하고도 불행한 비극의 당사자가 나였다.
아쉬운 점들이 계속 생각났다. 내가 입사일이 몇 주만 더 빨랐더라면..? 한국에서 미리 재택근무하면서 비자 받는 대로 relocation을 했다면..? 매니저와 연락을 더 자주 해서 친분을 쌓았더라면..? 아니면 연봉 협상하지 말고 처음 제시한 대로 받아서 아마존의 재정 상태에 덜 부담이 됐더라면..? 아마존 말고도 다른 곳에 지원해서 보험을 들어놨었더라면..? 세계 경제가 더 좋았더라면..?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생각하면 할수록 허무하고 짜증 나고, 아쉬웠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 쇼츠를 스와이프하며 무의미한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Link to heading
해고 이후 처음으로 전 회사 동료분들과 하는 술자리였다. 공교롭게도, 전 회사 분 한 명, (전 회사에서 T사로 이직한) T사 회사 분들 세 명이었다. 몇 명은 같은 백엔드 팀에서 일했던 분들이었고, 몇 명은 같이 프로젝트 한두 번 같이 해본 사이였다. 다들 나한테 회사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고, 본인이 있는 곳으로 꼭 왔으면 좋겠다고, 다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지금 당장 면접 봐도 붙을 수 있을 거라고. 같이 일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고 나는 “난 사람” 이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위로의 말들을 많이 해줬다.
집에 와서는 (다른) 팀원들이 내가 퇴사할 때 써주신 손 편지도 읽어봤다. 나와 일 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질문들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고 사소한 부분들까지 챙겨줘서 고마웠다고. 본인도 매니저가 된다면 나와 같은 매니저가 되고 싶다고. 술 취해서 자세히는 기억 나지 않지만, 모든 말들이 내 자신감을 회복하게 해줬다.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큰 위로가 됐었다.
(여담이지만, 앞으로 ”kudos” 폴더를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코난 오브라이언의 다트머스 졸업 축사1를 보게 됐다.
It is our failure to become our perceived ideal that ultimately defines us and makes us unique. It’s not easy, but if you accept your misfortune and handle it right, your perceived failure can be a catalyst for profound re-invention.
불행을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대처를 한다면, 결국에는 재창조를 위한 촉매제가 된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예전에도 축사 영상을 본 적 있었지만, 그때는 웃어넘기기만 했지, 이번처럼 마음에 와 닿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해고당한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고, 더는 이것들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기로. Circle of Concern으로 인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 대신,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2
출처: Circle of Concern vs Circle of Influence
새해가 밝았고, 2023년에 복 많이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특히나 더 많이 받으라고..
해외 빅테크 취업, 언젠가는 다시 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아니, 취업은 이미 해봤으니 해외 빅테크 근무를 목표로… 이번에는 운 안 좋게 입사도 하기 전에 해고당했지만, 다음에는 그러한 불운마저 이겨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더욱더 정진해야겠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평생 술안주 썰 풀게 생겼다는 거. “야 너네 해고당해본 적 있냐? 그것도 입사 전에?” 로 시작하면 30분은 떠들 수 있을 듯.
Put On A Happy Face 출처